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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기까지

by 원더웍스 2022. 6. 29.

EXCHANGE STUDENT PROGRAMME

교환학생이 뭔데?

사실 나는 남들과 다른 독특한 인생을 살아 왔다고 자신 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국제 유학박람회에 가게 된 이후로 부터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때가 90년대 말 이었으니, 인터넷이 한창 보급이 되고 삐삐가 아닌 휴대폰이 점차적으로 보급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지구가 멸망 한다는 얘기도 있었던 그 시절.. 

처음으로 열린 국제 유학 박람회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무료 초대장도 발급이 많이 되고 있어 

손쉽게 무료 입장권을 획득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지방 출신의 꼬꼬마가 처음으로 서울, 코엑스에 가게 되었습니다. 

 

호주, 캐나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그때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국가들로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유학 컨설팅 회사들이 수백여개가 

주욱 늘어서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유학을 가야겠다는 굳은 의지와 결의로 참석했던 박람회가 아니었기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더 놀라운건 유학을 가는데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아버지 혼자 외벌이로 벌고 있고 전업 주부인 엄마와 세자매..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변변찮은 학원도 하나 보내주지 못할만큼 

딱 우리 다섯식구 부족하지 않을 만큼,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생활만 영위하고 있는 

노동층의 가족은 절대 꿈꿀수 없는 액수에 너무 놀라기도 했고 앞으로 다가올 입시지옥에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했습니다. 

 

딸의 미래를 짓밟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은 차마 

유학비용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고 하셨습니다. 

 

세상물정 하나 모르는 저도 그곳은 제가 서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수 있었습니다. 

 

매일경제 신문사 교환학생으로 발탁되다 

그렇게 박람회장을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진행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 안내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해 본적도 없는데 교환학생이란게 무언지 알았을까요? 

 

교환학생 (exchange Foriegn student), 요즘은 EF로도 불리는 그런것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미국인 가정에서 거주하면서 공립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다니! 

 

신이 있다면 저에게 꼭 이 기회를 잡으라고 외치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장벽이 있었으니, 매일경제에서 진행하는 영어시험에 통과를 해야만 교환학생 자격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딱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못했고 학교에서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던 제게 그 시험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시험을 치러 종로 매일경제 신문사로 오라고 하는데.. 무슨 시험인지도 모르고 어떤 영어 공부를 해야하는지도 모르니 그저 막막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러 갔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첫 교환학생 프로그램이었고, 지원자도 우연치 않게도 달랑 저와 제 또래의 남자 학우 한명 뿐 이었습니다. 

 

덤덤하게 "에라 될 대로 되라!" 라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고 나왔는데 

하나 차이로 제가 컷트라인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도 답을 고친 문제로 당락이 좌우 되었다면서, 

그 문제를 고치기 전으로 수정하면 딱 컷트라인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전달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시험은 그저 절차에 불과 하고 지원하는 사람은 모두 보내는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그렇게 운이 좋았다 라는 말을 들으며

정말 우연과 운이 겹쳐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교환학생의 특성상 가고싶은 도시나 학교를 정할 수 없다는 아주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저 나를 받아주겠다는 가정이 있으면 그 곳으로 가는 시스템. 

 

제발 너무 추운 곳이나 너무 외지고 무서운 동네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학생비자를 준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제가 가게 된 곳은 놀랍게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입니다. 

(훗날 제가 다시 결혼하고 이민을 와서 살게 된 곳도 애틀란타 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졸업까지 채 한달을 못 남기고 

친구들과 인사도 못한 채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엔 미국 학생비자 받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서 

3차 인터뷰까지 대사관에 가서 진행을 해야 했고 

학생비자가 잘 안나오기로도 유명했던 시기였는데 

5년짜리 학생비자를 떠억- 하니 받고 나니 기분이 참 이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행 비행기는 커녕 살면서 비행기를 타보지도 못하기도 했고 

남의 집에서 하룻밤도 자 본 적이 없는 저를 

가족들은 모두 걱정을 하며 

'아마 한달도 못 버티고 울면서 집에 올거다' 라는 생각으로 

있었다 합니다. 

 

출국 당일까지도, 제가 만나게 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지, 다정하고 착한 사람들인지, 혹은 말로만 듣던 

외국인을 학대하고 못살게 구는 나쁜 사람들일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애틀란타 공항에 도착하면 나를 마중나와 있을거라며 사진 한장과 가디언의 이름만 남겨 주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철 없던 그 시절의 나 

그런데 참... 

그때 저도 철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신문물이라는 MP3를 선물받고 너무 좋아 

밤새 음원을 다운받아 저장하느라 출국 전날밤을 꼬박 새었거든요. 

 

정작 출국 당일엔 아무 생각도 없고 그저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어떻게 하고 

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승무원이 뭘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한 생각에 

꽉 차 있어서 밤새 MP3에 음원을 다운받을게 아니라 영어 공부를 했었어야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던 와중에 아버지가 헐레벌떡 어딜 다녀오시더랍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놀란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저는 뭔가 일이 잘못 되었구나 싶었는데 

아버지 손에는 왠 약병이 두개 들려 있었습니다. 

 

우환청심환. 

 

우환 청심환 하나를 급히 따서 건네며 하나는 지금 마시고 

하나는 도착하면 마시라며 챙겨주시는데 

 

그제서야 내가 가족들과 멀리 떨어지는 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던 딸이었고 

무모해서 용감했던 딸 이었습니다. 

 

부모가 된 지금에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나는 그때 그시절의 부모님처럼 결단을 내리고 딸을 유학 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어려운 결정 이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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